우리가 재래적이라고 부르며 극복하고 없애고 싶어 했던 한옥의 비과학다움이 이런 경험적이고 정성적 요소의 좋은 예이다. 이것을 비과학적이라고 본 것 자체가 사실은 잘못된 것이다. 물질적 기준에서 보면 비과학적이지만 경험과 정성의 기준에서 보면 오히려 과학적일 수 있다는 역설이 숨어 있다. 한옥을 건강한 주거형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. 이렇게 보면 앞에 늘어놓은 한옥의 불편함이 거꾸로 과학다움과 건강함으로 뒤바뀐다. 예를 들어보자. 한옥의 참맛은 햇빛과 바람을 온전히 맞아 즐길 수 있을 때 제대로 알 수 있다. 낯선 전문용어로 설명하는 대청 지붕의 구조나 어려운 동양철학에 견주어 설명하는 공간의 원리 등을 알지 못해도 한옥은 경험만으로도 그 가치와 이로움을 부족함 없이 느낄 수 있다.
햇빛과 바람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한옥의 참 의미를 알 수 있다

햇빛 한 줄기와 바람 한 줌을 고마워할 줄 아는 정신자세와 그것을 살갗과 땀구멍과 신경과 핏줄을 이용해서, 온몸으로 체화해서 즐길 수 있는 몸만 있으면 족하다. 말처럼 쉽지는 않다. 이런 생리작용을 마음과 정신으로 연결해서 균형 잡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섬세한 감각이 필수적이다. 무지막지하게 효율적인 기계문명의 도움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한옥이 주는 경험적 건강함은 별 쓸모가 없어 보일 것이다. 소소하고 나약한 자연요소에 크게 감동받고 고마워할 줄 아는 섬세한 감각이 살아 있어야 한옥의 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.
한옥의 참 의미는 한겨울 따뜻한 햇빛을 만끽하며 삭풍이 두렵지 않을 때 비로소 알 수 있다. 또한 한여름 폭염을 저 멀리 하늘에 붙들어두고 허파까지 시원하게 흩어내는 통(統) 바람과 통(通) 바람을 즐길 때 비로소 알 수 있다. 햇빛과 바람은 결국 같이 작동하는 것일진대, 한옥이란 겨울에는 햇빛을, 여름에는 바람을 붙잡아 끌어들이기에 가장 적합한 구조를 하고 있다. 햇빛을 알뜰살뜰 주어 옷 속 깊숙이 담고 피부 구석구석 바를 수 있을 때, 그리해서 햇빛을 말초신경 끝마디까지 짜릿하게 느끼고 모세혈관 끝 가닥까지 가득 채울 수 있을 때, 따라서 햇빛을 통해 나의 존재를 여실히 깨달을 때, 그러할 때 한옥의 참맛을 비로소 알았다 할 수 있다. 또한 한여름 죽부인 끼고 대청에 속옷 바람으로 뒹굴 거리며 수박 까먹으며 시원한 바람을 느낄 때 한옥의 참맛의 나머지 반을 알 수 있다. |